ESB Research 2026년 2월호

한승엽 교수 (회계 전공)
Han, S.-y., Jung, S.-M., Park, S., & Shin, J. Y. Forthcoming. Agency problem and the use of past spending variance information in government budgeting. Journal of Management Accounting Research.
이 논문은 우리나라 정부 데이터를 활용하여 중앙부처의 과거 지출 변동(spending variance)이 기획재정부, 국회 등 예산당국에 의한 예산 조정 과정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반영되는지를 분석한 연구입니다. 기존 문헌에서는 정부 예산이 미집행(underspending)보다 초과지출(overspending)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지적해 왔습니다. 그러나 중앙부처의 조직 신뢰성(organizational trustworthiness)이 이러한 정부의 비대칭적 예산 조정 결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본 연구는 예산당국이 인식하는 중앙부처의 신뢰성 수준이 정부의 비대칭적 예산 조정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규명하고자 하였습니다.
연구 방법은 비교적 직관적입니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우리나라 47개 중앙부처를 대상으로, 당기 지출 변동과 차기 예산 조정 결과를 각각 독립변수와 종속변수로, 여기에 중앙부처별 신뢰성 수준을 조절변수로 하는 다중회귀분석을 실시하였습니다. 중앙부처의 신뢰성은 외부에서 직접 관측되지 않고 계량화가 어려워 다음의 세 가지 지표를 통해 복합적으로 측정하였습니다. 첫째, 국민권익위원회의 청렴도 조사 결과를 활용하여 조직 투명성과 윤리성을 평가하였습니다. 동 설문은 국민, 공무원, 외부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각 부처의 행정 투명성, 직원 윤리, 부패 경험 등을 포괄적으로 조사할 뿐만 아니라, 복수의 독립된 전문 설문조사 기관이 교차 검증을 실시하여 설문 방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사 결과의 신뢰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둘째, 국회의 모니터링 강도를 지표화하여 외부 감시 수준을 측정하였습니다. 각 중앙부처의 인력 수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심의인력 인원 수의 상대적 비율을 산출한 후 해당 값의 연도별 중앙값을 기준으로 고·저 집단을 구분하였습니다. 셋째, 중앙부처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기반으로 부패 또는 비위 적발 이력 여부를 통해 해당 부처의 신뢰성을 측정하였습니다. 동 지표는 평가자의 주관적 인식을 배제하고 조직 신뢰성을 직접적으로 측정하여 객관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주요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선행연구와 일관되게 우리나라 정부 예산 조정 과정에서도 초과지출이 미집행보다 더욱 강하게 차기 예산 증액으로 이어지는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관측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대칭성은 모든 부처에서 동일한 수준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예산당국은 각 부처의 대리인 문제에 대한 우려 수준을 고려하여 조정 강도를 달리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청렴도가 높거나 부패 이력이 없는 중앙부처에 대해서는 초과지출이 ‘실제 자원 수요’를 반영하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되어 예산이 크게 증액된 반면, 그렇지 않는 부처에서는 초과지출이 ‘비효율’이나 ‘사적 이익 추구’와 같은 부정적 신호로 간주되어 비대칭성이 유의미하게 약화되거나 관측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정부 예산 조정이 과거 지출 변동을 일괄적으로 반영하는 기계적 과정이 아니라, 각 부처별 예산 집행 정보의 의미와 그러한 정보의 신뢰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는 복합적인 과정임을 시사합니다.
본 연구는 두 가지 학술적 의의가 있습니다. 첫째, 기존 연구가 정부 예산 조정을 부정적 의도를 전제로 ‘비용 통제’의 관점에서만 바라본 것과 달리, 본 연구는 공공부문 예산 연구에서 ‘조직 신뢰성’이 예산 배분의 중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임으로써 공공재정 연구를 위한 새로운 이론적 틀을 제시합니다. 둘째, 본 연구는 과도한 예산이 대리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기존 연구의 주장과 달리, 예산당국이 신뢰성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부처별 대리인 문제의 정도를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다면 예산당국이 부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할 수 있다는 새로운 정책적 함의를 제공합니다.
위와 같은 학술적 의의와 함께 본 연구의 진행 과정 또한 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이 논문은 관리회계 전공의 동국대학교 정선문 교수께서 제 박사과정 졸업논문 발표를 듣고 협업을 제안해 주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재무회계 전공인 제가 제1저자로서 관리회계 전공 교수님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여 결과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이 논문은 저에게 학문적 협업의 가치와 의미를 체감할 수 있는 값진 경험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또한 연구 초기, 관리회계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Ratcheting 개념을 차용하여 논문의 스토리라인을 구성하였으나, 리뷰 과정에서 해당 용어가 독자들에게 특정한 선입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 논문의 방향을 전면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동일한 회계 분야임에도 재무회계와 관리회계 등 세부 전공 간에 생각보다 큰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JMAR는 관리회계 분야의 top-tier journal이나 SSCI에 등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내 실적 평가를 넘어 해당 저널이 보다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이라는 공저자분들의 조언과 의기투합 속에서 오랜 기간 연구의 완성도를 높여 나갔으며, 최종적으로 뜻깊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 연구는 단순히 논문 출판을 넘어, 저에게 연구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소중한 연구 기회와 경험을 선사해 주신 공저자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