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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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하는 경영학자’의 위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화내지 마” [차 한잔 나누며]

  • 작성일 : 2023-09-27
  • 조회수 : 792
  • 작성자 : 경영대학/경영전문대학원 관리자

‘아트팝 가곡’ 창시한 김효근 교수 ‘세일한국가곡상’ 수상자 선정
힘든 청년들에게 들려주고픈 가곡은 ‘가장 아름다운 노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화내지 마, 슬픈 날들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들 오리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을 당시 들으면 위로가 됐던 가곡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중 일부다. 러시아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를 김효근(62) 이화여대 교수(경영학)가 번역하고 작곡한 노래다. 이 곡을 포함해 김 교수가 지은 ‘눈’, ‘내 영혼 바람되어’, ‘첫사랑’ 등 인기 가곡 6개가 중등 교과서에 실려 있다. 


▲ ‘작곡하는 경영학자’로 불리는 김효근 교수가 지난 18일 이화여대 경영대학 내 개인 연구실에 자리한 건반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컴퓨터 화면에 김 교수 주도로 개발한 예술종합플랫폼 ‘아트링커’가 보인다. 남정탁 기자 


지난 1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이화신세계관 4층에 있는 연구실을 찾아가니 ‘작곡하는 경영학자’가 반갑게 맞았다. 경영학 관련 서적이 빼곡한 방에 떡하니 자리한 피아노 건반과 오디오, CD(앨범) 선반을 보니 그의 정체성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작곡은 김 교수에게 오랜 숙제였다고 한다. “중학생 때 집안 형편이 아주 어려워졌는데 이발소에 갔다가 벽에 걸린 푸시킨의 시를 봤어요. 그 시 덕분에 힘든 시절을 견뎌냈습니다. 본격적으로 작곡 활동을 시작한 2007년 이후 항상 ‘위시리스트(작곡 희망 목록)’에 올려뒀는데 2014년에야 완성했네요.” 첫 소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0개 글자에 맞는 음표들을 조합해 처연함과 비장함, 속상함, 희망을 한데 느낄 수 있는 곡을 만드느라 7년이나 걸렸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가곡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음악가의 길을 걷고 싶었지만 부모님 반대에 부딪혀 일단 서울대 경제학과로 들어갔다. 이후 음대 수업까지 챙겨 들으며 작곡 기법과 음악 이론을 배운 뒤 3학년이던 1981년 제1회 MBC 대학가곡제에서 작사·작곡한 ‘눈’으로 대상을 거머쥐었다. 참가자 중 유일한 음악 비전공자였기에 더욱 화제가 됐다.

 

그러나 전공 공부와 강의·연구활동에 매진하느라 음악 활동에 거리를 뒀다. 다시 곡 작업에 팔을 걷어붙인 건 26년이 지나서였다. “2007년 원로 작곡가들 모임에 초대받아 가서 보니 한국 가곡이 몹시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경영학 논리로 보면 손님(음악 소비자)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 제품(가곡)이 된 거죠. 여전히 옛날 방식 그대로 작곡하거나 난해하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작곡하는 게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시의 문학성과 클래식 음악의 선율 등 가곡의 예술성(아트)을 살리면서 영화음악처럼 대중성(팝)을 확보한 세련된 음악 요소들을 접목해 ‘아트팝 가곡’을 만들기로 했지요.”


▲ ‘작곡하는 경영학자’로 불리는 김효근 교수가 지난 18일 이화여대 경영대학 내 개인 연구실에 자리한 건반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컴퓨터 화면에 김 교수 주도로 개발한 예술종합플랫폼 ‘아트링커’가 보인다. 남정탁 기자 


김 교수가 제자 등 주변에 들려주고 반응을 살피는 시장 테스트까지 거치며 2010년 내놓은 첫 아트팝 가곡 앨범 ‘내 영혼 바람 되어’는 음악계 안팎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추모하려 미국의 시를 번역해 만든 대표곡 ‘내 영혼 바람되어’는 물론 대학가곡제 대상곡 ‘눈’과 아내에게 프러포즈한 곡으로 만들어진 ‘첫사랑’ 등 다른 수록곡도 큰 인기를 끌었다. ‘내 영혼 바람되어’는 훗날 세월호 희생자 추모곡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지금까지 낸 정규앨범만 공연 실황 음반 2개를 합쳐 10개다. 실력파 성악가들은 물론 유명 뮤지컬 배우 등 많은 사람이 그의 가곡을 즐겨 부르고 젊은 작곡가들이 아트팝 가곡 흐름에 합류하면서 ‘가곡 인구’도 늘어나고 있다.

 

‘가곡은 성악가가 부르는 진지하고 클래식한 곡’이란 편견을 깨고 한국 가곡이 소생할 수 있도록 대중화의 길을 튼 김 교수의 역할이 컸다.

 

다음 달 시상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제15회 세일한국가곡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유이다. 김 교수는 “수상 소식이 믿기지 않을 만큼 놀랍고 영광스러웠다”며 “정통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클래식계에서 (저를 아마추어가 아닌 진짜 작곡가로 봐주고) 제 곡들의 가치를 인정해준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세일한국가곡상은 매년 한국 가곡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예술적 가치를 높이고 대중화에 공헌한 작곡가와 성악가 등을 뽑아 상패와 상금 1000만원을 전달한다.

 

김 교수는 몇 년간 공을 들여 개발한 예술종합플랫폼 ‘아트링커’도 조만간 일반에 선보인다. 예술가와 소비자를 연결해 부담 없이 홍보와 작품 판매, 레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문화예술 활성화를 촉진하는 플랫폼이다. 

 

그의 가곡들은 특히, 외롭고 힘든 처지의 사람들에게 위안이 된다. 노랫말 곳곳에 위로와 희망, 사랑, 용서, 행복, 회복의 씨앗이 심겨 있기 때문이다. 요즘 힘들게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곡을 물었더니 2019년 지은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꼽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 아직 부르지 않았지, 오늘 나 초라하고 슬퍼도 지금 멈추지 않을 테요, … 오늘이여 나 다시 시작하겠소, 내일이여 그대는 듣게 되리니, 세상이여 영원히 기억하리라, 아름다운 가장 아름다운 나의 노래여.”